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령 알제리 (문단 편집) === 지배와 개발 및 토착민 차별 === 식민 통치를 하면서 알제리 북부 해안지대가 프랑스 남부 해안지대와 유사한 자연환경[* 실제로 알제리의 이웃국가인 [[튀니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빈번해지기 전인 2013년 무렵까지도 프랑스인들이 휴가철마다 즐겨찾던 휴양지였다.]을 가졌음을 파악한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를 제2의 프랑스로 만들어 영구히 지배하겠다는 계획으로 강력한 프랑스화 정책을 추진했다. 알제리 내륙이 건조하고 척박한 것과 다르게 해안지대는 겨울에 춥지도 않으면서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지도 않고 비가 적당히 와서 토질이 비옥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프랑스화에 발맞춰 수많은 유럽인[* 많은 수가 프랑스 혈통이었지만 스페인, 몰타 등의 혈통도 있었다.]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거 알제리로 이주했는데 식민 통치가 끝날 무렵인 1950년대 말 이들 유럽계 이주민들의 수는 알제리 인구 1000만 중 100만 명 이상이었다. 중세부터 알제리에 거주하던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잽싸게 프랑스 식민통치의 지지자가 되었다.[* 오늘날 프랑스 유대인의 상당수는 세파르딤 유대인이며 프랑스 세파르딤 유대인의 과반수가 바로 알제리 독립 이후 프랑스로 건너온 알제리 출신이다. 프랑스 유대인은 원래 [[아슈케나지]]가 다수였으나 [[홀로코스트]]로 인해 수가 크게 줄었다.] [[알제]]나 [[오랑]] 등의 알제리의 주요 도시들은 유럽 도시 분위기가 짙게 나타나는데 당시 이주해 온 유럽인들이 이 도시들에 정착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검은 발이라는 뜻의 [[피에 누아르]](Pied-Noir)라 불리며 식민 지배 시기 알제리 사회에서의 기득권을 독차지했다. [[피에 누아르]]들은 사막에 물을 끌어올려 개간해서 나무와 식물을 심어 녹림과 밭으로 만들었고 포도 등을 재배해 프랑스에 수출하여 많은 이득을 얻었다. 수출용 제조 공장들도 다수 있었다. 알제리는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 프랑스 공군, 육군, 해군의 주요 군항과 많은 군수물자 공장들도 알제리에 있을 정도였다. 그 유명한 [[프랑스 외인부대|외인부대]]가 여기서 시작했고 이 최정예 부대의 본거지였다. 물론 현지 토착 아랍인과 베르베르인들은 차별받았다. 현지인들은 유럽계 이주민보다 높은 세금을 내야 했고 알제리의 유럽계 이주민들은 현지인들을 열등하고 나태한 [[민족]]으로 보았으며 '쥐새끼'라고 부르면서 공공연히 경멸했다. 프랑스 지배 이전 현지인들은 부족 단위로 토지를 소유하였는데 프랑스는 현지에서 사유재산권을 확립하면서 공유재산인 부족 재산의 처분에 대해 제약을 가했고 이런저런 구실로(주로 프랑스 통치에 반항했다는 이유) 현지인들의 토지를 빼앗아 유럽계 이주민에게 매각했다. 공업에 있어서도 프랑스 본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는 알제리를 산업의 원료가 될 자원의 공급지와 자신들의 공업 상품을 팔아줄 시장으로 두었으며 이를 위해 현지인들이 공업 자본가가 되는 것을 방해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제3공화국|프랑스]]가 독일에 맞서기 위해 알제리의 인력과 물자를 동원했는데 이때 28만 명 정도의 알제리인들이 프랑스군에 징병되어 참전했고 약 8만 명 정도가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고 많은 수의 알제리인들은 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알제리는 많은 인력을 희생하고 물자를 제공했지만 하지만 전후 프랑스 본국은 알제리에 대한 푸대접을 이어갔다. 프랑스 [[극우]] 진영과 이에 영향을 받은 미국 일부 우파 역사가들은 [[식민지 근대화론|프랑스가 알제리를 근대화했다고 주장하지만]] 프랑스의 인프라 투자는 피에 누아르들이 대거 정착한 식민도시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정작 알제리 현지인들은 비옥한 해안가의 옥토들을 빼앗기고 추방당한 뒤 내륙의 척박한 토지를 경작해야 했다. 피에 누아르들의 소득이 계속 증가하던 것과는 반대로 알제리 현지인들의 소득은 인구 증가와 더불어 계속 감소했으며 피에 누아르들에게만 평등 교육이 진행되고 무슬림들을 일부러 학교 교육에서 철저히 배제하는 등 차별적인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알제리 독립 이후에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엘리트 대우를 받거나 교사를 할 수 있었다. 프랑스가 알제리를 지배하면서 아랍인과 베르베르인 등 알제리 토착민들이 차별받자 토착민들은 '알제리인'이라는 정체성을 각성해 알제리 민족국가, 즉 독립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프랑스 점령 이전까지는 같은 알제리 지역에 살아도 '알제리인'이라는 정체성이 희미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자체적인 국가가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알제리 전역을 확고하게 통일한 왕조가 없었다.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이 명목상으로 알제리 전역을 통치했지만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갖추지는 못했고 지역 유력자들을 명목상 태수로 임명해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간접 통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